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세계 대전 (문단 편집) === 기타 주요국 === [[폴란드]]는 이후 [[소련군]]과 그에 협력한 폴란드 공산당에 넘어가 공산화되어 [[폴란드 인민 공화국]]으로 소련의 [[위성국]]화 된다. 소련과 폴란드 공산당은 이 과정에서 파시스트들과 싸웠던 [[폴란드 망명정부|망명정부]] 및 [[폴란드 국내군]] 소속 장교들을 서방의 간첩으로 몰아 처형하는 희대의 만행을 저질렀다. 이후 소련의 간섭을 겪다가 이에 반발한 [[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]]가 집권하고 후반기 경기 침체로 쫓겨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[[레흐 바웬사]]의 자유 노조 운동으로 마침내 1989년 공산당 독재가 종식되었다. 폴란드는 냉전이 끝나자마자 바로 [[NATO]]와 [[유럽 연합]]에 가입하여 서방 세계에 복귀했다. [[체코슬로바키아]]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[[뮌헨 협정]] 당시 독일에게 빼앗긴 국권과 수테텐란트 지방의 영유권을 나치의 패망으로 다시금 되찾았으며 [[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]]의 활약으로 연합국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. 하지만 뒤이어 들어온 소련군과 소련이라는 외세를 등에 업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의해 공산당의 지배하에 들어가 역시 [[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|소련의 위성국]]으로 전락했다. 그러다가 스탈린 사후 공산 체제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면서 [[알렉산데르 둡체크]] 등 개혁파 세력들이 집권하여 이후 체코 내부에서 [[프라하의 봄|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민주화 운동]]이 일어났으나 소련이 체코에 대한 군사 개입을 일으켜 반정부 세력들을 진압하였고 둡체크의 개혁 정책에 반발하던 체코 공산당 내 보수파 세력들이 소련의 군사 개입을 등에 업고 둡체크를 몰아내면서 실패하였다. 그러나 소련군의 반정부 운동 진압 이후에도 [[바츨라프 하벨]] 등이 이끄는 반공 세력들의 반정부 투쟁이 이후에도 지속해서 이어졌고 1989년 동유럽 자유화 바람을 틈타 [[벨벳 혁명]]이 일어나게 되어 마침내 야케스 공산당 서기장과 [[구스타우 후사크|후삭]] 대통령이 퇴진하고 이후 실시된 민주 다당제 대선에서 반공 운동 지도자였던 하벨이 당선되면서 마침내 공산당 독재 체제가 종식되었다. 그리고 1993년 벨벳 이혼으로 [[체코]]와 [[슬로바키아]]로 갈라졌고 양국 모두 EU와 NATO에 가입했다. [[네덜란드]]는 추축국에서 해방된 이후 연합국 자격을 얻었지만, 식민지였던 [[인도네시아]]가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에서 독립하려고 하자 [[인도네시아 독립전쟁|인도네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.]] 그러나 한물간 식민주의를 거부하던[* 사실 미국이 정말 진지하게 우려하던 것은 바로 공산주의의 확산이었다. 당시 소련은 반제국주의 이념을 내걸고 독립을 시도하는 제3세계 국가들을 지원하고 있었고 이 인도네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. 따라서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와 전쟁을 끌면 끌수록 공산주의의 인도네시아 내 확산 속도가 빨라질 것이 뻔했기에 미국 측에서는 빨리 네덜란드를 인도네시아에서 철수시켜야 했다.] [[미국]]의 경제지원 관련 압박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철수, 인도네시아에게 상당량의 돈만 받고 독립을 승인했다. 이후엔 [[수리남]]과 같은 해외 식민지가 모조리 독립하고 [[아루바]] 등 소수만 남긴 채 [[벨기에]], [[룩셈부르크]]와 함께 [[유럽연합]]에 가입하고 현재는 서유럽의 중견 선진국으로 남았다. 그래도 전범재판에 대한 발언권을 확보하여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의 전쟁 범죄자들을 처벌할 수 있었다.[* 일례로 자신들이 처형한 일본 전범이 사실은 다른 전범에 의해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자 즉시 일본에 소환을 요구했고 일본은 어쩔 수 없이 진범을 보냈으며 네덜란드인들은 그를 재판에서 기관총으로 총살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